9) "광릉 가는 길"에서 "왕의 길"을 묻다. 7대, 세조와 정희왕후능

조형기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2 00: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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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육도 내친 비정한 권력자 이미지 불구
병풍석 참도도 없는 소박한 왕의 무덤
"왕위찬탈對 시대적당위성" 엇갈린 시선

​광릉은 조선 7대 임금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가 잠든 능으로 능 자체보다 오백년 넘게 세월을 이어온 숲으로 더 유명하다. 예전에는 "광릉 수목원"이라 부르던 곳을 지금은 "국립수목원"으로  칭하고 광릉 보다 수목원을 찿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로 태어나, 1445년 수양대군으로 책봉된다.

권력에 야심이 컷던 세조는 단종 즉위 다음해에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1455년 왕위를 건네 받는다.

밖으로는 국력을 크게 강화해 북방의 여진족을 정벌하고, 안으로는 '경국대전'을  찬술하고 편찬 하는등  국가의 모든 제도를 정비하는등 많은 치적을 쌓았다.

 

정자각을 중심으로 좌우 언덕에 왼쪽에는 세조의능, 오른쪽에는 정희왕후의 능을 썼는데 이는 조선 최초의 동원이강릉(同原異康陵)이 된다. 정희왕후 승하후 세조릉의 왼쪽 언덕에 왕후릉을 조성하고 정자각을 중앙에 새로 세워 함께 제사을 지냄으로써, 광릉(光陵)의 단독 능호를 유지하는 새로운 배치양식은 이후 조선 왕릉제에에 큰 영향을 끼친다.

 

세조의 유언대로 능역은 간소하게 꾸며진다.

백성들의 노동을 줄이기위해 봉분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석실과 석곽도 사용하지 않고, 회격(관과 관중(廣中)사이를 석회로 다짐) 으로 대신한다.  병풍석을 없애면서 병풍석에 새겼던 십이지간 글씨는 동자석주에 옮겨진다.  홍살문부터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신도(神道)와  참도(參道)도 생략해 능의 입구부터 능역이 소박하기까지 느껴진다.

 

정희 왕후 윤씨의 능이다.

정희왕후는 슬하에 덕종(추종.의경세자)과 예종 . 의숙공주를 두었는데 장남 덕종(추존)이 요절하고 예종이  즉위하여 1년만에 승하하자, 덕종의 둘째아들인 13세, 자산군(성종)을 왕위 계승권자로 지명하여 당일로 즉위 시키고, 7년간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계유정난때  세조를 독려 했던 일화등 강인한 면모를 보여 준다.

 

정희왕후릉 난간석과 동자석주

 

광릉의 원찰 봉선사.

광릉 동쪽 2km에 있으며 세조가 승하하고 난뒤 세조비 정희왕후에의해 지어지고  그이름도 '선왕의 능침을 수호하는 원찰'이라는 의미로 "봉선사"(奉先寺)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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