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참혹한 현장, 잊을 수가 없다"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1 19: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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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0월9일 아웅산 사태 현장
<전 MBC 카메라취재부 이재은 기자>
1983년 10월9일 아웅산 사태 현장



 나는 기억 한다  그날을!

모두들 잊어 버렸을,  1983년 10월 9일.

 
그날의 그 참혹한 현장을 어찌 잊으랴!
아웅산 테러.
평생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꽝 !!!!!!!!!'하는 폭발음과 함께 고막이 찢어지는 아픔과 집채만 한 지붕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아 아 아 아" 찢어지는 아픔을 참지못한 비명 소리,  순식간에 흙먼지와 함께 모든것이 무너진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1983년 10월 8일. 대통령 전두환은 공식 수행원 22명과 비공식 수행원 등과 함께 
동남아 5개국의 공식 순방길을 출발했다.
버마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순방길의 첫 방문지였으며, 
다음 날은 버마의 독립운동가 아웅산의 묘소에서 참배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운명의 10월 9일, 
10시가 지나 대통령은 숙소에서 출발 했고, 부총리 서석준을 비롯한 수행 공무원들과 경호원들과 수행원들은 참배할 장소에 도열 하였다
나도 선배인 임채헌 기자와 함께 촬영할 위치에 서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ENG카메라가 혼자가 아닌 2인 일조, 카메라는 임채헌 선배  나는 레코더를 메고 있었다.

시간이 임박하여  대통령의 차가 들어오는 장면이 필요 할 것같아 옆에 있던 기자들에 자리를 맡아 달라고 하고 한두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꽝 !!!!!!!!!'

고막이 찢어지는 아픔과 천정이 솟는 모습은 건설현장 기공식 때 발파 하는 모습과 같았다.

"선배님 전경을 촬영하고 오십시다". 전경을 촬영하고 급히 현장으로 다시 갔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연합통신 김기성 기자가 보이고, 수행원들이 도열했던 현장은 지붕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진 잔해 아래에 사람들이 깔려 있었다.
외무장관 등 여러 명은 현장에서 바로 순직 하였고, 저쪽에서 약간에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기백 합참의장 이었다.

여기저기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요란한 그 큰 묘지는 반 토막이나 있었다.

어느 정도 취재가 끝나고 레코더를 임선배를 주고 부상자를 옮기러 갔다

정말 몇초 순간 삶과 죽음이 엇갈리었다
우리 회사의 문진영 기자를 비롯하여 많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부상을 입었고,  
비행기부터 취재까지 줄곳 옆자리 였던 동아일보의 이중현 사진기자가 현장에서 사망 했다.
바로 옆자리에 같이 서있다가 취재를 위해 한 발짝 돌아선 나는 살아 있다. 

현장에서 빨리 호텔로 복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임선배와 함께 차를 타고 갔다
가면서 누가 그랬을까?   버마 , 북한,  버마라면 자기네 사람도 많이 죽었는데......

호텔 도착하니 우리외곽 팀과 경제 수행단이 보였다
"다 죽었어요. 수행 장관들 다 죽었어요."
피로 범벅이 된 나의 옷을 보고 모두 놀란다.
혹시 뺏으러 올지 몰라 촬영본 3벌을 복사 하여 숨기고
경제 수행단과 외곽 팀들에게 상황을 설명 하였다.

그러나 그 화면은 방송 되지 못하고 방송 금지라는 청와대의 조치에 묻혀 있다가
한해 지난 후 사정사정해서 방송되었다.
폭발되는 순간이 촬영 되었고, 처음부터 셔터를 끊치 않고 생생히 촬영된 것은
임채헌 선배의 노련함에 있었다.

나에겐 생과 사의 갈림길 이었으며 내가 살아가면서 어려운일이 있을때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죽었었다면" 하고 되뇌는 정말 아프고 쓰라린 기억이다.
                  
   <전 MBC 카메라취재부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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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보사협님 2020-10-11 22:37:25
잊혀져 가는 옛역사를 재조명해주신데 감사합니다.
역시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하고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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