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noon Tea Time / 코엑스 라치과 김재철 원장> 치과는 부업, 문화는 본업

조용수 기자 / 기사승인 : 2020-07-25 19: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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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몸은 만물의 근원을 상징
- 성적 대상이 아닌 생명을 잉태하는 아름다움의 대상

[NET PHOTO=조용수 기자] 임플란트는 빠진 치아를 대체하는 치과 치료법으로 상실된 치아 자리에 티타늄으로 제작한 나사를 뿌리삼아 인공치아를 심는 원리를 이용한 치료법이다. 임플란트 시술은 자연치아와 심미적, 기능적으로 유사할 뿐 아니라 수명이 길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이러한 임플란트의 역사적 기원은 기원전 2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치아가 상실된 고대 이집트인들이 조개껍질이나 상아 등을 이 대신 사용하려 했다고 기록돼 있다. 기원전 600년 때 고대 마야인들도 조개껍질로 가짜 이를 만들어 넣었다고 한다.
 

임플란트가 국내에서 시술된 것은 1980년대부터다. 국내 임플란트 시술의 대중화에 앞장선 대표적인 의료인으로는 일본 동경치과대학 보철학 석사, 일본 국립 히로시마대학 구강외과학 박사 출신이자 일본 임플란트 인정의 214호인 코엑스 라치과 김재철 원장을 꼽을 수 있다. 김 원장은 1980년대 당시 치과계가 임플란트 시술을 두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전한다. 티타늄에 무지한 상태에서 이를 재료 삼아 턱뼈 골융합을 기조로 하는 임플란트 시술을 시행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낯선 치료법이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그렇게 위험한 치료법을 함부로 소개해도 되느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 그만큼 임플란트 시술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에 따라 브레네막 센터 자료를 국내에 지속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또 꾸준히 임플란트 시술에 대한 글을 기고하는가 하면 경남 진해에 치과를 개원해 직접 임플란트 시술을 하기도 했다.

한계를 느껴 일본으로
김재철 원장의 은밀하고도 특별한 사생활을 살피기 전에 먼저 그의 이력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는 국내 치대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치과대학에서 보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국립히로시마대학에서 구강내과 박사학위를 받은 1980년대 당시로서는 드문 엘리트 치의학 박사다. 무엇보다 일본에서조차 인정을 받는 일본 임플란트 ‘인정의 214호’이면서 국내 임플란트 시술을 대중화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시로서는 치의학 분야에서 상당히 앞선 일본에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선택은 아니다. 학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도 있지만 굳이 유학을 하지 않아도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던 탓이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그는 왜 유학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군의관 시절도 거슬러 올라간다.

“군의관 시절 어느 새댁이 찾아왔습니다. 자기 손으로 직접 이를 뺐다고 하는데, 입 안을 들여다보니 엉망이었어요. 틀니 외에는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했는데, 틀니를 끼면서 울더군요. 저도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치과의산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처참했습니다. 한계를 경험한 거죠.”

김 원장은 당시 경험이 유학을 결정하게 된 이유라고 말한다. 이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았고, 국내에 치근형 임플란트 대중화에 앞장서게 된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일본에서 돌아와 임플란트를 국내에 소개하던 80년대만 해도 티타늄에 대해 무지했고, 임플란트 시술 자체를 낯설어 하던 터라 비난 섞인 시선과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치과임플란트연구회’를 만들고 임플란트를 이해시키기 위해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수년간 치과계 잡지에 원고를 투고하는 등 임플란트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그는 원장은 임플란트에 있어서 선구자 역할을 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그는 치과 의사라는 타이틀 이면에 예술가적인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흥미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김 원장의 은밀한 사생활
김재철 원장은 병원 내에 그림을 전시해놓고 있을 정도로 그림을 사랑한다. 20여 년 전 우연히 그림을 접하고 난 뒤 그림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5백 점이 넘는 그림을 수집한 콜렉터다. 그가 운영하는 코엑스 라치과에는 대기실은 물론 진찰실 등 방방마다 여러 점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치과를 내원하는 환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림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감상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좋은 그림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즐기고 싶은 마음에 특별한 기교 없이 병원을 하나의 갤러리처럼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림만이 아니다. 그는 사진에도 조예가 깊은데, 젊은 시절부터 작품사진을 찍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치대 재학 중 전공서적보다 사진학 원서를 찾아 읽었다고 하니 사진에 대한 그의 열정을 짐작할 만하다.
그림과 사진 중에서도 그가 관심을 보이는 작품은 누드이다. 여성의 몸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누드는 대학시절부터 줄곧 견지한 부분이다.

“처음에는 여성의 몸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여성의 누드를 예술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판단하는 사회의 시선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미학의 관점에서 누드를 바라본다. 대학시절 다방에서 일하는 여성을 설득해 누드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연 적도 있다. 그와 모델과의 비밀이었지만 어떻게 소문이 돌았는지 그 여성이 어느 날 일을 그만두고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 여성의 몸은 만물의 근원을 상징한다. 그 저변에는 설명처럼 우리가 태어난 곳이 바로 여성의 몸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적 대상이 아닌 생명을 잉태하는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몸은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김 원장에게는 다양한 영감을 주는 피사체인 것이다.

병원에는 누드사진이 곳곳에 놓여 있다. 보수적인 이들에게는 낯 뜨거운 사진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김 원장은 오히려 그것을 경계한다.

“누드를 예술로 보지 않는 편견이죠. 어른들의 시선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금기시하는 겁니다. 애들한테는 보여주면 안 된다는 생각 자체에 저는 이견을 갖고 있어요. 예술적 누드사진이나 그림을 자연스럽게 접해야 합니다. 금기시할수록 오히려 왜곡된 가치관을 갖게 됩니다.”

누드사진을 시작으로 사진이 가진 기록의 의미까지 그는 사진을 통해 사람과 사물을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려 한다. 그림을 모으고, 사진을 찍는 일이 본업이고 치과는 부업이라는 소문이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어느 곳에 작지만 아름다운 건물이 하나 있다. 1층은 차를 마시고 예술을 이야기하며 가끔은 작은 공연도 가능한 공간이다. 2층에는 미술관이 마련되어 있고, 3층에는 사진작품을 만드는 스튜디오가 있다. 그리고 4층에는 무료진료를 하는 치과가 있다. 상상만으로도 낭만적인 건물이다.

김재철 원장의 꿈은 작지만 아름다운 4층 건물에 가 있다. 이 꿈은 그가 7년 전 암투병을 하며 삶과 죽음을 경험한 후 그리기 시작했다. 치열한 삶보다는 이제는 삶을 즐기고, 이웃과 나누며 사는 일이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암을 극복한 기적처럼 김 원장의 은밀한 사생활이 다른 이들의 삶 또한 변화시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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