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박태홍 기자 80년 광주민주항쟁 "이 사람을 보라" 전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과 518민주재단 주관으로 80년 민주항쟁 당시 취재한 전 전남매일 나경택 기자(왼쪽)와
전 한국일보 박태홍 기자의 사진 자료를 지난 3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5개월 동안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518기념공간에서 "이 사람을 보라" 전시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송창헌 기자 =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5·18기념재단과 공동으로 3월1일부터 7월 말까지 전일빌딩245 5·18기념공간 기획전시실에서 5·18 제41주년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아 '이 사람을 보라' 기획전시회를 갖는다.
이 기획전시는 5·18 당시 숨겨진 인물을 발굴해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로 지난해 10월에는 1980년 5월 당시 경찰에 대한 전시회를 연 바 있다. 이번 전시회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전직 언론인 나경택씨의 흑백필름과 5·18 기증자료인 박태홍 일기 등이 전시된다.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였던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본부장은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유산등재 신청 당시 소장하고 있던 흑백필름 2017컷을 광주시에 위탁·기증해 5·18민주화운동의 비극성과 반인권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국일보 사진부 출신으로, 뉴시스 편집위원을 지낸 박태홍 전 기자는 생사를 넘나 드는 긴박한 현장에서 붉은 글씨로 쓴 신원확인용 메모를 가슴에 품고 다니며 오월의 광주를 필름에 담았다.
그는 당시 품고 다닌 신원확인용 메모와 긴박한 심경을 적어 내린 일기, 그리고 취재한 내용을 외부에 알릴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 대한 죄책감을 담아 써내려간 사직원 등의 여러 자료를 5·18기록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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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대형 태극기를 들고 시민 총궐기대회장인 도청 앞 분수대로 입장하고 있다. 나경택 기자
공수부대 계엄군이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한 시민을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있다. 나경택 기자
시민군이 광주 금남로 대로에서 계엄군과 대치하며 자동차에 불을 질러 검은 연기가 솟고 있다. 나경택 기자
계엄군이 부부로 보이는 시민을 곤봉으로 때려 연행하며 피투성이가 된 여인이 수건으로 남편의 피를 닦아 주고 있다. 나경택 기자
아들과 남편을 잃은 여인들이 광주 북구 망월동 묘지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진 수많은 주검 앞에서 울부짖고 있다. 나경택 기자
계엄군에 총을 맞아 숨진 광주 모 중학교 학생의 책상 위에 국화꽃을 놓고 동료 학생들이 명복을 빌며 묵념하고 있다. 나경택 기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총을 든 청년들이 전남 광산군 송정리역 광장에서 자동차 타이어에 불을 붙이고 “계엄철폐 독재 타도!”, “김대중 석방”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1980년 5월 21일 박태홍 기자
광주 도청에서 열리는 시민군 총궐기대회에 참석하는 시민을 태우고 가기 위해 송정리역 앞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소총을 든 여성(왼쪽 세번째)이 버스에 타려고 걸어가고 있다. 1980년 5월 22일 박태홍 기자
계엄군이 시민군을 체포한 후 도청 마당에서 군홧발로 목을 밟고 포승줄로 묶고 있다. 1980년 5월 27일 박태홍 기자
어린이들이 전남 광주공원 부근 골목에서 시위하는 시민군 항쟁하는 모습을 본떠 만든 가면과 몽둥이를 들고 걸어가고 있다. 1980년 5월 23일 박태홍 기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가슴에 품고 다닌 "나는 한국일보 기자입니다. 연락 바랍니다."라고 쓴 붉은 글씨의 빛바랜 신원 확인용 메모지. 1980년 5월 23일 박태홍 기자
광주 시민들이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국내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방송국에 불을 지르고 국내 사진기자들이 카메라를 꺼내면 간첩으로 몰아 사진을 찍을 수 없는 환경에 자괴감으로 쓴 일기형식의 기록이다. 1980년 5월 24일 박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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