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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박정근의 "엿가락과 담배연기"사진전2021-08-2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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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9.1~9.20

전시장소; 서이갤러리(종로구 계동길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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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가락과 담배연기 -박정근-

 

할아버지는 엿과 담배를 좋아하셨다. 뜨거운 여름날 사방으로 휘어지던 엿가락과, 할아버지의 코인지 입인지 혹은 눈이었는지 모를 곳에서 스미어 흩어지던 담배연기의 끝에는 뜻밖에도 한국전쟁이 있었다. 제주 43이 궁금해 이야기를 듣던 중이었다.

오태경 할아버지는 제주 4.3 피해자이자 한국전쟁 참전 용사이다. 할아버지가 경험하신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투와 수난의 역사와는 다른 모습으로 펼쳐졌다. 전쟁에도 일상과 희노애락이 존재했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대의와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법 속에 가려진 인간이 존재했다. 첫 전투에서는 피와 죽음이 무서워 덜덜 떨었지만, 점차 나라를 지키는’ ‘군인정신이 들어 무섭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할아버지는 강조하셨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투 이야기가 무르익어 살육이 연상될 즈음이 되면 할아버지는 화제를 급전환해 꽝꽝 얼었던 차디찬 주먹밥과 주머니에 넣어두고 조금씩 뜯어 먹던 커다란 건빵, 미군들이 건네준 너절한 옷가지와 같은 말랑말랑한 일상 이야기를 꺼내곤 하셨다. 왜 하필 매번 그 순간이었을까. 할아버지의 난데없는 서사 전환은, 까맣게 지우고 싶었던 끔찍한 기억을 너무나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기억으로 덮고 싶었던 <무의식이> 아니었을까...

 

할아버지 정체성은 역설적이었다. 43에서는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한국전쟁에서는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운 용사였다. 엇갈리는 정체성은 국민을 지켜주지 않고 폭력을 행사한 나라에 대한 비난지켜야 했고 잘 지켜낸 나의 나라라는 상반된 감정이 공존과 부딪침을 동시에 가져왔다.

-----중략----

오태경 할아버지는 전장에서 자신을 위로했던 사물로 엿과 담배연기를 꼽으셨다.

엿가락을 반으로 부러트려 단면을 본 적이 있는가. 겉으로 보기에 단단한 엿가락에는, 조청을 길게 늘였다가 다시 겹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끝에 엿으로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정형, 비정형의 무수한 공기구멍이 들어차 있다. 빨대삼아 불면 반대편으로 바람이 제법 세게 나올 정도로 구멍이 숭숭뚫려 공기가 들고 난다. 담배연기는 입과 코로 스며 나와 출처를 알기 어렵고 주변의 사물로 퍼져 경계를 뭉그러뜨린다. 주변 사물, 현상과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엿가락과 담배연기와 같다. 얼핏 견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호하게 뒤엉켜 있어 명확히 경계를 구분 지을 수 없다.

엿가락과 담배연기는 성형이 쉽기도 하다. 여름 한 낮, 엿은 깔끔하게 반으로 잘라지지 않지만 쉽게 휘기 때문에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 담배연기는 얼굴의 어느 부분이 출처인지 정확히 특정할 수 없지만 마음먹으면 구름을 입 속에서 띄어 내보낼 수도 있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일부 요소를 선택적으로 강조하거나 지워버림으로써 ()의도적인 미화까지 가능하다.

우리의 인식 속 사물, 사건, 인물은 엿가락과 담배연기처럼 경계가 모호해서 구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가변적이어서 상황에 따라 이리도 저리도 돌려 입어 나를 방어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엿과 담배연기의 물성(物性)은 정의짓기와 경계짓기에 익숙한 우리의 실제를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과 사물은 결국 짓기의 결과물이다. 문제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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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담배연기#엿가락#서이갤러리#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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